어느 날.

상민이가, 오랜 친구의 퇴소 선물로 줄 피쳐폰 충전기를 사들고 가던 날.

충전기의 새빠알간 빛이 그의 가슴에 박혀있던 숫자와 너무나도 닮아있었기에. 상민이는 저도 모르게 TV를 켰다.


토요일 오후 9시 45분.

이제는 이 시간에 TV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리모컨에 손이 가는 것은 상민이의 의지가 아니었다.

TV에 붙어있던, 가넷같이 새빠알간 딱지를 떼어낸 상민이는 치킨을 시켰다. 그리고 새빠알간 딱지가 붙어있는 냉장고에서, 새빠알간 딱지가 붙어있는 캔맥주를 한캔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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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났어..."


어느새 치킨은 차디차게 식어 있었고, 캔맥주는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민이는 TV를 껐다.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경훈이가 언제 저렇게 커버렸는지, 왜 그와 함께 할 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 섭섭함, 슬픔, 분노, 회한.

복잡한 감정에 상민이는 문득, 윈드밀을 추고 싶어졌다.

저도 모르게 상민이는 새빠알간 딱지가 붙은 휴대폰을 꺼내어, 주소록을 뒤적였다.

[개새끼]


  -뚜루루루, 딸깍.

  "여보세요."

  -상민이... 형?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훈이 목소리의 떨림은, 휴대폰 탓일까 아니면....

상민이는 찌그러진 맥주캔을 움켜쥐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둘 사이에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 형. 그냥 방송 안 보시는게...

"나는 응원도 하지말까?"

-그런 말이 아니라...

"뭐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휴대폰을 내던지려던 상민이는, 휴대폰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경훈아 나... 맛탱이가 가버려도 되니?"

-.... 뚜뚜뚜뚜.

"크흡... 큽..."


상민이는 꺼져버린 전화기를 붙잡고 엎드려 울다가, 이윽고 지쳐 잠이 들었다.

상민이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