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 술만 들이켰다. 이 자리를 당장 떠나고 싶다. 3회 탈락이라니...

"형 좀 드세요. 왜 아무것도 안 드세요..."
"입맛이 없어서..."
"ㅎㅎㅎ 당연히 떨어졌는데 입맛이 없겠지~"
"뭐라고?"
"자, 자 현민아 건배~"
"네 형님 ㅎㅎ 천천히 천천히"

동민이 저 새끼 자꾸 깝죽대는 꼴 보니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당장이라도 술잔을 집어던지고 싶다.

"상민이형... 저 진짜, 죄송해요 제가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제가 멍청해가지고..."

취기가 한껏 오른 경훈이가 머뭇거리다가 울먹이면서 말을 꺼냈다. 정말로 미안한건지, 후폭풍이 두려워서 연기하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결승 빼면 얼굴도 안 볼 사이인데 후폭풍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아리까리하다.

"경훈아 형은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니가 최대한 높이 갔으면 좋겠다. 알겠지 경훈아!"
"네.. 꼭 제가 결승까지 가겠습니다, 형"
"우승까지 하겠다고 해야지~ 너는 꼭 애매하게~ ㅎㅎㅎ"
"ㅎㅎㅎㅎ"
"그나저나 상민이 형님, 떨어지셨는데 뭐 남기실 소감 없어요? 처음으로 목이 베인 왕이 된 소감!"
"동밍이형 그만해요 지금 상밍이형 컨디션 이거(손가락을 아래로)에요 이거"
"아이 뭘~ 그건 상관없고 그냥 나는 형님 얘기 듣고 싶어서 그래~"

동민이가 지금 무슨 의도로 저러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딴 말을 하면서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능글능글 웃고 있다.

"하아... 할 말까지야 뭐... 나 화장실 좀..."
"같이 가죠? 오늘의 주인공 이상민씨 ㅎㅎㅎㅎㅎ"
"형 그만해요 상민이형님 기분 나빠 하는거 눈에 보이잖아요."
"유현아 너는~ 끼어들지 말고~ ㅎㅎ 아이~ 뭐 그래도 상민이형보다 오래 갔으니 그걸로 됐다 ㅎㅎㅎ"
"이 새끼가!!!!"

테이블을 쾅 치면서 일어났다. 옆에서 경란씨하고 현민이가 살짝 걱정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연승이가 놀란듯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본다.

"야 이 새끼야 너는 탈락한 사람 약 올리는게 좋냐? 너같은 새끼가 내 다음 우승자였다니 진짜 쓰레기같은...."
"형 상금이 부족해서 그래요? 우승하면 좀 떼어드려요??ㅎㅎ 여러분~ 우리 빚에 쪼들리는 상민이형님을 위해서 누구든지 우승한 사람은 한 오십만원 정도는 상민이형한테 드립시다~"

사람들이 분위기를 보고 참고 있지만 웃음을 쿡쿡 터뜨린다. 순식간에 나는 몇 십 명 앞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먼저 간다. 동민아 너 진짜... 그러지 마라."

홱 뒤돌아서 그대로 걸어나갔다. 뒤에선 동민이도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 대신 사람들이 망신당하고 쫓겨나듯 나가는 나를 쳐다볼 시선이 두려웠다. 그래서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다.'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고 그대로 주변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어느새 혼자 넋두리를 하다보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가혹하기도 하지... 참..."

아마도 인생에서 마지막 지니어스 출연이었을 그랜드파이널 3회전. 그리고 광탈. 이제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없다. 그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난 진짜 잘했는데. 진짜 나는. 인생에 있어서 참 되는 일이 없구나."
"상밍이형 여기서 모해요?"
"어? 진호야 니가 여기 왜 있어! 회식 끝났어?"
"아뇨, 안 끈난는데 상밍이형 걱쩡되가지고 나왔는데 여기 계시네요."

[쨍그랑-]

먹던 술병을 던져버리고 진호의 손을 잡았다.

"진호야..."

이미 술기운이 올라 눈 앞도 비몽사몽한 상태. 눈을 다시 감았다 떠보니 진호는 없었다.

"하하 뭐 그렇지... 헛것을 봤구나. 나 주제에 무슨... 그냥 나는 겉돌기만 하지..."

그 때 눈에 아까 던져서 깨진 술병이 보였다.

"에이...씨이.. 기껏 샀는데... 아깝게.... 내가 왜.. 이거를 던졌지? 진호야 너는 끝까지... 헛것 진호마저도 나를 방해하는구나..."

술에 많이 취해 어눌한 목소리. 그렇지만 그 목소리엔 광탈자의 슬픔이 담겨있었다.

"으으... 술을 다시 사러 들어가야..."

[털썩]

"너무 취했..나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네..."

이내 비틀거리다가 곧 쓰러졌다. 길바닥에 쓰러져 자는 동안 그랜드파이널을 우승하는, 행복한 꿈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