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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갤단편문학] 스투팔이 소녀

ㅇㅇ(77.177) 2015.12.25 00:12:11
조회 4688 추천 126 댓글 28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이었다.

가로등이 깜박 속아 넘어갈 정도로 따스한 색의 빛을 흘리고, 별이 사라진 하늘 아래 각자 자신의 별을 품에 안고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밤이 세상을 삼킬 수록 밝아지는 거리의 조명에 홀린 것마냥, 떠도는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기다리는 성탄의 밤이 기울고,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비틀거리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가운데.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스투 팝니다, 공허의 유산 해 볼 생각 없으신가요?.."

붉게 튼 손에는 '스타크래프트 2 : 공허의 유산' 이라 적힌 상자가 들려있었다. 약하게 떨리는 다리 아래로는 그와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붙잡을 새도 없이, 언제나 해왔던 그대로 미끄러져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목소리가 찬 공기로 갈라져 흘러나왔다.

"저기, 공허의 유산 한 번만..."

"에이, 그런 거 요즘 누가 해요. 다 롤이나 하지..."

안쓰럽다는 듯, 지나가며 던지는 말에는 아무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힌 것만 같았다. 꼭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마냥.

"스투..."

"아, 안 해요 안 해. 자기야, 나 오늘 골드 승급시켜 줄 거지?"
"응? 어, 어.. 그럼, 내가 버스 태워 줘야지"

남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안하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무관심, 동정.

"자~ 크리스마스 밤을 함께할 위쳐 3! 돌아온 갓겜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성탄특가! 올해 최다고티에 빛나는 위쳐 3 보고 가십시오~"
"올해도 잊지 않고 돌아온 베데스다! 그렇죠~ 폴아웃 4 있습니다~ 고티킬러 베데스다 화제의 신작! 얼마 안 남았습니다!"

소녀가 서 있는 큰길가의 반대편에서는 화려한 간판과 장식품으로 도배된 상점들이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저기여..."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을 부른 꼬마 아이에게 대답했다.

"응, 왜?"

"이거 잼써여?"

순진하게 묻는 아이를 향해 소녀는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럼! 17년을 걸어온 스타크래프트 대서사시의 끝..."

짝-

"어디... 우리 애한테 그런 걸 팔려고 해!!"

미소를 찢는 손길은 겨울보다도 차가웠다.


"가자, 엄마가 언더테일 사 줄게. 저런 건 이상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알겠어?"


"아, 엄마아~!"


소녀는 화끈거리는 뺨을 매만지며 여자의 손에 이끌려 멀어지는 아이를 바라봤다. 얼얼하게 퍼지는 고통이 갈라진 살갗을 타고 번졌다.


마음 속에 먹물이 번진 것마냥 퍼져 나가는 감정이 턱까지 차올라,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뜨겁게 비명을 지르는 뺨 위로 더욱 뜨거운 눈물이 선을 긋고 지나갔다.


턱으로 맺혀 방울지는 눈물이 보도블록 위로 부서져 바닥을 적셨다.


"엄마! 애들이 자꾸 로우바둑이한테도 진다고 놀려!"


"괜찮단다, 스투는 시간이라는 분이 돕거든...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도 갓겜이 될 수 있어"


"진짜? 우리도 피시방 인기게임 폴더에 갈 수 있어?"


"그럼..."


어릴 적 쌓아 올린 희망이란 탑이 안쪽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소리가 머리를 웅웅 울렸다.


시간을 믿고 병상에서 GSL을 시청하던 어머니는 공허의 유산 시네마틱 트레일러마저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 따위는, 스투를 돕지 않았잖아.


"깜짝이야, 쟤 갑자기 왜 저래...?"

"스투충이 또..."

"저거 다 누가 치우지?"


쌓여 있던 공허의 유산 패키지를 길가에 내던진 소녀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이 창대마냥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야..."


소녀는 겨울 바람에 싸늘하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공허의 유산 소장판 패키지를 하나 집어들었다.


"안 망했어..."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소녀는 공허의 유산 소장판을 집어들고 근처의 피시방으로 달려갔다.


"어서오십... 어이쿠, 뭐가 이렇게 급해?!"


리니지로 생계를 이어가는 피시방 사장이 미친 듯이 달려가 자리를 찾는 소녀를 바라보며 내뱉었다.


소녀는 제일 구석진 곳에 빈 자리에 앉았다. 패키지를 하나도 팔지 못해 돈이 없어 후불로 등록을 하고 게임 폴더에서 스타크래프트 2 라는 글자를 찾기 시작했다. 


없었다.


소녀는 차오르는 감정을 씹어 삼키며 공허의 유산 CD를 넣어 직접 게임을 설치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접속한 첫 화면에 보이는 문장 하나.


현재 공개 채널에 있는 플레이어 : 144명


결국에는 망겜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망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자유의 날개부터 시작된 여정의 끝은, 소녀에게 잔혹한 종말을 알렸다.


"엄마..."


소녀는 공허의 유산을 끄고 소장판에 동봉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CD를 넣었다. 천천히 헤드셋을 쓰니 들려오는 웅장한 공허의 메아리.


21개의 음악이 스쳐 갈 때마다 머릿속에 환상과도 같은 무언가가 그려졌다.


갓겜이 되어 있는 스타크래프트 2 : 공허의 유산


10만 관중 동원에 성공한 스타크래프트 1을 잇는 완벽한 국민게임의 행보


블리즈컨 스타크래프트 2 결승전 시청자수 100만 달성


피시방 점유율 압도적인 7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2


그런 환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쏟아지는 졸음은 소녀를 차갑게 감싸안았다.


그렇게, 소녀는 21번째 마지막 OST가 끝난 뒤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롤과 서든어택을 하러 온 학생들이 소녀를 발견했을 때에는 너무 늦어 이미 소녀가 동사한 뒤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녀는 공허의 유산 소장판을 끌어안은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즐겁게 스투얘기를 하는 꿈이라도 꾸는 듯.



p.s 이 문학을 크리스마스에도 집에서 갤질이나 쳐 하는 스창인생 스시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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