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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쿠자와 인섹의 이야기

껄껄(61.99) 2013.02.14 00:55:14
조회 51376 추천 145 댓글 143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병실, 나이 꽤나 지긋해 보이는 노(老)의사가 묵묵히 모쿠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쿠자는 의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지레 짐작을 하면서도 모르는 척, 창가를 바라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대웅 씨,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럼요. 언제든지 경기에 나갈 수 있을 정도니까요. 애들이 기다릴 텐데……. 퇴원은 언제 하죠?"

노()의사는 모쿠자의 말에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에……. 그게 대웅 씨도 아시겠지만은, 선수 생활을 계속 하기에는 무리가……."

모쿠자의 눈빛은 여전히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의사의 말은 그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은퇴, 건강, 무리, 그런 단어들만이 간간이 멍한 그에게 들려왔다. 

모쿠자의 뇌리에는 그런 단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때론 구박하기도 하지만 항상 웃으며 넌지시 장난을 걸어오던 막눈, 멍청한 구석이 있지만 순진한 훈, 감성적이던 비닐캣, 무고하다고 놀림받던 히로. 그네들은 이제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을 터였다. 

모쿠자는 입원할 무렵, 이따금씩 넷과 다시 모여 게임을 하던 꿈을 꾸곤 했다. 때론 패배하기도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이 더 많은 그 때가 떠올라 모쿠자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아니, 넷이 모이는 것을 떠나 모쿠자가 관중석 앞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의사가 한참을 설명하고 나간 뒤, 모쿠자는 울리는 카톡을 확인했다.

'형! 우리 오늘 결승이에요. 끅 이길게요ㅋㅋ 아 오타남ㅋㅋ'

막눈이었다.

모쿠자는 피식 웃으며 리모콘을 찾았다.










티비 속 막눈은 울고 있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나진의 이름을 달고, 막눈은 우승컵을 차지했다. 

막눈은 그 날 자신과 팀원들만이 울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다음날, 모쿠자의 병실 옆에 있는 환자가 간호사에게 항의를 해왔다. 

밤새 옆병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다며 주의를 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묻는 말에, 그는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쿠자형, 오랜만이에요."

"조팝이냐?"

모쿠자는 때 아닌 손님에 환히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가끔 안부 인사를 자주 하던 동생, 인섹이었다. 모쿠자는 반가워서 웃으며 그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표정이 굳었다.

"너 오늘 경기날 아니냐?"

그러자 따라 미소 짓던 인섹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퇴원한지 얼마 안 됐다고 왜 모르겠는가. 인섹이 얼마나 힘들었고, 또 힘들게 될 지를.

"cj는 경기가 있는데……. 저는 경기가 없네요."

"그러냐……. 뭐 좀 먹을래?"

인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들어와라. 춥다."






"그래서, 다른 팀에도 못 들어간다는 거냐?"

"네……. 그렇게 됐네요."

모쿠자는 인섹에게 잔을 건넸다. 인섹은 씁쓸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들여 단숨에 술을 삼켰다. 

"저는요. 형이 정글러로 뛸 때가 제일 재밌었던 거 같아요. 그 때는 프로 욕심도 없었고……. 형이랑 게임하는 것도 재밌었고……."

모쿠자는 잔을 내려치듯 탁상에 내리더니 인섹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너는 정글러다. 팀이 편해도 네가 힘들고 팀이 힘들면 너는 더 힘들다. 너도 알잖아?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고."

인섹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난 그런데 더 이상 정글러가 아니야. 프로도 아니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 중에 하나가 은퇴한 프로게이머야. 그런데 너는?"

모쿠자는 스스로 잔에 술을 채워 숨 쉴 새도 없이 넘겼다.

"너는 아직 아니지. 넌 아직 내가 있는 곳으로 오려면 멀었어. 넌 한창이야. 그런데 벌써 포기하려고?"

"……."

"나는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온갖 조롱과 비난을 먹어가면서도 팀을 위해서 정글을 돌았다. 하지만 넌 이제 나보다도 뛰어난 정글러잖아. 넌 임마, 크게 될 놈이야.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야. 아직 나보다 나쁜 상황의 정글러는 없어. 그러니까 임마……."

모쿠자는 술에 취해 스르륵 탁상에 쓰러졌고, 인섹은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고민하더니 이내 모쿠자를 침대 위에 올려다 놓고 밖으로 나섰다.

밖에는 때 아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인섹은 빨개진 코끝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음 경기는 언제일려나, 하고 중얼거리며 타박타박 걸어갔다.

눈길 위로 발자국이 하나둘씩 새겨지고 있었다.

마치 정글에 남겨진 정글러의 발자국처럼…….







 


"안녕."


"안녕."


"나는 인섹이야."


"나는 규태라고 해."


"너는 이 구간 사람이 아니구나?"


"응, 맞아. 나랑 같이 놀래?"


"난 너랑 놀 수 없어."


"왜?"


"너와 난 입석하지 않았으니까."


"입석?"


"입석을 모르는구나. 입석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마법의 수단이야."


"그렇구나……."


"나와 같이 버스 입석을 할래? 그렇게 해줘. 그러면 난 버스 엔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를 떠올릴 수 있을 거야."


"입석을 하면 뭐가 좋아?"


"예를 들어 네가 7시 반에 온게임넷으로 온다면, 나는 7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네가 7시에 온게임넷으로 온다면, 나는 6시 반부터 행복해서 미리 잠을 자두겠지."


"그런 거구나……. 좋아. 난 너와 입석하고 싶어."


"그래. 그러면 내일 온게임넷으로 와."


하지만 인섹은 오지 않았다.


-롤갤러들을 위한 동화, 어린규태 中






내가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땐 그저 웃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은퇴하고 나서 너와 이 문구는 볼 때마다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구나.


너는 훌륭한 정글러다. 


나는 너를 조팝이라고 부르지만 너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정글러다.


너는 정말로 그 날 오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너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실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네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그 실수보다도 더 훌륭한 정글러의 플레이라는 거다.


나는 이제 여기서 사라지지만, 넌 아직 나를 따라올 때가 아니다.


너는 경험에 있어서 조팝이기에 아직 더 경험을 쌓고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이 들 때가 되서야 내가 있는 곳으로 와야 한다.


사람들이 조롱거리로 인섹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아니라, 찬사를 표할 때 인섹이라는 단어를 쓰도록 만들어라.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넌 그럴 수 있다.


너의 정글이 너만의 정글이 아니기를 빌며…….














옛날에 한 명의 정글러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지내다가 어느날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또 다른 한 명의 정글러가 있다.

그는 아직도 과거의 오욕을 씻기 위해 묵묵히 정글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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