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 전이다. 노양심들에 명치 터지며 나도 양심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놈리건에 내려가 살 때다.
스톰윈드 왔다 가는 길에, 아이언포지로 가기 위해 깊은굴 지하철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깊은굴 지하철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카드를 만들어 파는 노움이 있었다.
노양심 카드를 한 장 사 가지고 가려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루를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카드 한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움이었다.
가루를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제작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만들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제작하고 있었다.
인제 그 정도면 충분히 노루년 머가리는 쪼갤 수 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시즌 말이라 전설 달기엔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만들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제대로 막을 수 없어야 노양심이라 할 수 있지, 무턱대고 명치 때린다고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만든단 말이오? 외고집이시구먼. 빨리 전설 달아야한다니까요.”
노움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이번 시즌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만들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쉽게 막히고 손패에도 늦게 들어온다니까. 카드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제작하다 놓아버리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만들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카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카드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가루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움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움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탁자 위에 놓인 스패너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움다워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짜리몽땅한 팔다리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움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장의사 카드를 내놨더니 렉사르는 잘 만들어왔다고 야단이다.
나는 그물거미나 오염된 노움이랑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렉사르의 설명을 들어 보니, 1코스트에 칼같이 나와서 2/2만 버프 먹여도 제거가 힘들고 다른 죽메 하수인과 함께 명치만 디립다 패면 6~7턴만에 머가리를 터뜨린단다. 요렇게 노양심인 것은 좀체로 없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움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베타부터 내려오는 노양심은 필드정리는 뒷전이요 하수인 교환은 남의 일이니, 툭 툭 머가리만 때리다 보면 너덜너덜해진 명치에 후달려 알아서 먼저 하수인 교환을 하게 만든다.
위니 흑마들은 닥치는 대로 손패 털어서 죄다 명치에다 꼴아박다보면 적은 막다 지쳐 끝내 머가리가 터지던가 알아서 진즉에 항복친다.
그러다 재수 좋아서 겨우겨우 막아내고 필드장악해서 역전각을 만들면 그냥 항복치고 다음 게임 신나게 명치 후리면 되니 이만큼 고민 없이 신나게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게 얼마나 있단 말인가.
냥꾼만 해도 그렇다. 죄다 명치 때려 박고 적 하수인은 빙덫으로 다시 쑤셔넣고 도발 뜨면 징표나 치사로 싸게싸게 뚫어버리고 명치 너덜너덜하게 만들고 나면 고정사격으로 냐금냐금 마무리 하면 되는 터였다.
나는 그 노움을 찾아가서 만능스패너라도 하나 사드리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등급전 하러 가는 길로 그 노움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움이 앉았던 자리에 노움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움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 혼자 머가리 부술 꿀같은 카드 몇장 더 구하지 못함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옆에 있던 드워프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있었던 카드팔던 노움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오?”
“아, 그 노움... 그제 죽었어요.”
“아니, 죽다니? 왜?”
“그 노움 고집도 고집이지만 가루도 무지 밝히잖수. 장의사가 최고 노양심 카드라고 비싼가루에 팔아먹었는데 그제 장의사 너프먹고 꾼들에게 머가리가 반쪽나서 골로 갔소이다.”
“....”
오늘 여관에 도착해 등급전을 돌리니 필드 뺏긴 렉사르가 흐느끼면서 열심히 고정사격만 날리고 있었다.
요새는 필드 점령은 뒷전하고 머가리 비우고 명치만 칠 수 있는 좋은 카드를 못찾겠다.
문뜩 일주일 전에 나에게 장의사 팔아먹던 그 노움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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