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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밤/장편] 겨울의 연속 - 1

Thaw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4.26 02:59:39
조회 2491 추천 22 댓글 5
														

프롤로그를 읽으셔야 본작의 이해가 가능합니다.

프롤로그

 주작기 계-끼 문들문들

-----------------------------------------------------------------------------

 

 

 

 

 

 

 

다시 여왕은 병상 앞에 앉게되었다.
이번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그녀의 유일한 친혈육이었다.
 

“안나.”


침상에 누워있는 여인의 숨은 거칠었다.
수많은 죽음을 겪으며 여왕은 이제 더 이상 감정의 흐름에 따라 예전처럼 냉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답없는 동생의 이마에 솟아오르는 땀을 닦아주며, 이름을 계속 부를 뿐이었다.

 

“안나.”
 

그녀의 동생의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새겨져있었다.
왕제는 인생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즐겼다. 자신이 왕위를 잇던 잇지 못 하던 개의치 않았다.
외로웠던 과거를 딛고, 배신의 고통을 털어낸 후 착한 남자를 만나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여왕의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프.”

 

왕제의 옆에는 한 남자의 초상화가 놓여있었다.
동생의 남편.
여왕은 어느새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처음 자신의 얼음 궁전으로 난입해온 남자. 그때는 그가 자신의 동생과 사랑에 빠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생을 행복하게 해준 남자.
여왕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피어올랐다. 허나 곧 표정은 얼어붙었다.
그 역시 이제는 세상에 없었으므로.

 

“엘...사?”

 

곧 끊어질듯한 목소리가 그녀를 상념에서 일깨웠다.

 

“안나!”

 

여왕의 냉막한 표정이 깨어졌다. 그녀는 동생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다.
남편이 죽고난 후 줄곧 의식을 차리지 못 한 그녀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니는... 여전히 빵빵하네.”

 

왕제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깃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여왕은 여전히 젊음을 잃지 않았다. 여왕은 여전히 투명한 피부와 백금발의 아름다움을 뽐내었다.
마치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듯이.

 

“안나. 더 이상 말하면 안 돼.”

 

여왕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녀에게는 오랜 시간 깃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여왕은 동생을 품에 안았다. 왕제도 가늘어진 팔로 자신의 언니를 꼭 감싸안았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처럼 그녀의 표정은 평안했다.
 
“언니...”

 

“왜?”

 

“이거 기억나?”
 

똑,또도,똑똑.

 

“기억나지. 그럼. 네가 매일같이 눈사람 만들자고 했었잖아. 눈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던가?”


왕제는 여왕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자신의 원을 모두 이룬 것처럼.
여왕은 소리 없이 오열하였다.
이제 더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없었다.
눈물은 얼어붙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이불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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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은 왕제의 장례를 마치고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아들에게 국가의 통치를 일임하였다.
과연 그 부모의 피를 이었는지 구속받는 것은 어찌나 싫어하는지, 그는 왕위를 거절하려하였다.

 

“제가 왜 왕을 해야하죠? 저는 자유롭고 싶다구요.”

 

여왕은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에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리고는 땅을 향해 손을 살짝 튕겼다.
그러자 안개를 내뿜으며 위협적인 생김새의 눈거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라면 해.”

 

“넵.”

 

여왕은 그의 확답을 듣자마자 머리 위에 놓여있던 왕관을 집어던졌다.

 

 


여왕은 더 이상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의 삶에는 이제 남은 것이 없었다.
왕위를 내던지고서 가장 처음 한 일은 말을 타고 아렌델을 둘러본 것이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것도 없었고,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의 축제에 끼어 함께 놀았고, 춤을 추었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다시 말을 달려 널리 펼쳐진 들판을 질주하였다.

 

그녀 가는 길에는 하늘과 바람이 함께 하였다.
이제 나라가 어찌되던 여왕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다시 여왕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이제 자신을 유지하던 모든 것은 허물어졌다. 그녀는 철저한 개인이 될 수 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평생 볼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매일같이 바뀌는 풍경은 그녀의 마음 빈 곳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고, 처음 만났음에도 친절한 사람들의 웃음은 균열이 인 그녀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3년 후, 그녀와 함께 달리던 말도 더는 달리지 못 하게 되었다. 그녀는 말에게서 마구를 떼어준 후 말을 평야에 풀어주었다.
말도 아쉬운지 자꾸 그녀에게 치대었지만, 그녀는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고는 엉덩이를 한 대 두들겨 쫓아보내었다.
그녀는 이제 걷기 시작했다. 허나 힘들지는 않았다.
산을 오를 때에는 계단을 만들어 올라갔고, 강을 넘을 때에는 강 표면을 얼려 걸어갔다.
여인에게 다소 힘든 길일지도 모르나, 그녀의 얼굴에는 힘겨움 한 점 서리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북쪽 산의 얼음성. 우습지만 얼음성은 그녀의 손길 없이 몇 십년이 지났어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산에는 봄이 완연했지만, 얼음성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망가져있는 계단을 고쳐가며 성에 올랐다.


마침내 자신의 방에 도착한 여왕은 노곤했는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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