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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조선인의 화교학살과 배척테러 (5/5) 끝

안티파_굳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2.09 13: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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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은 당시 평양 화교학살 당시 참사를 목격했다. 

그 현장에 끌려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1934년 12월 1일에 그것을 수기로 썼다. 그 수기를 보면 군중들의 학살을 잔인했다. 

그런데 김동인은 여기에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게 없다. 

오히려 흥미거리로 보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보매, 집에는 아이들이며 아이들을 찾즈려 나갓든 사람이 모도 돌아와서, 오늘밤 견문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에 꼿이 한창피엇다. 아이들은 군중의 일지를 따라서 정거장까지 나가서 중국인들이 행장을 수습해 가지고 정거장에 모혀 잇는 것을 본 이야기를 한다. 순사들이 경게하고 잇서서 손을 부치지 못하드란 이야기를 하며, 중국인잡화무역상을 파괴하는데서 주서 왓노라고 「안주のみ취분」 두 통을 자랑하며 겸하여, 어떤 사람들은 큰 보통이로 물건들을 싸가지고 지고 가더라는 이야기를 한다』『「쉬야. 쉬야」문득 뒤에서 들리는, 겁먹은 이 소리. 돌아보니 웬 조선노인이- 아니 조선옷을 입은 중국노인이 빈사의 소년들을 부르는 것이엇다. 이 노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그것은 소설가인 나에게 잇서서는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커다란 수획이엇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경악도 아니엇다. 비애도 아니엇다. 겁먹은 얼굴도 아니엇다. 그것은 단지 무표정한 얼굴이엇다. 그의 입이 들먹거리지 않고 그의 입에서 음성만 나오지 안흐면 그것은 명공이 깍가노흔 한 개의 사인상이랄 수박게 업는 무표정한 긔게적 얼굴이엇다. 나는, 잠시 그 노인의 얼굴을 보노라고 다른 데 주의치 못하다가, 노인의 아페서 무엇이 음적거리는 것이 걸핏 보이므로 그리로 눈을 떠러트럿다.』

당시 현장에서는 화교가 군중에게 저항을 시도한 일도 있다. 김동인은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보기도한다.『거기서 발을 떼어서, 군중들의 틈을 빠저서 나가려든 나는 몃 거름 못가서, 진긔한 한 개의 비희극을 보앗다.어듸서 뛰처나왓는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의 중국인이 수만명의 흥분된 군중 가운데 뛰처 들엇다. 그가 뛰처들은 겻헤는 마츰 다행히 순사가 한명 잇섯다. 왁하니 중국인에게로 몰려드는 군중을 제어하는 순사가 그 중국인을 보호하려 할 때에, 중국인은 어듸서 주섯는지 (그 근처 일대는 무릅에 닷토록 비단 포목 등으로 두껍게 더 폇는데) 돌맹이 한 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게냥을 하는 것이엇다.미상불, 그는 너무 큰 공포 때문에 리성을 일헛든 것이다. 단 한 개의 돌맹이를 가지고 수 만명의 군중을 대항하려는 이 중국인의 행동은 성한 사람의 일로는 볼 수가 업다.』

그리고 김동인은 화교학살과 폭동, 테러를 보고 무언가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2년 4월 '삼천리'에서 단편으로 쓴 픽션소설을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붉은산이다.

붉은 산에서 정익호란 캐릭터가 나온다. 

그 캐릭터는 평소에는 조선인을 괴롭혔고 사람들은 그자를 '삵'이라 부른다. 

그러다 갑자기 조선인 소작농 송첨지가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죽는다. 

이 송첨지는 '삵'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삵'은 이 일을 원인으로 지주에게 대들었다 맞아죽는다. 그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선생님. 저는 갓섯슴니다.」

「어듸를?」

「그놈―지주놈의 집에.」

무얼? 余는 눈물 나오려는 눈을 힘잇게 다덧다. 그러고 덥석 그의 벌서 식어가는 손을 잡엇다. 잠시의 침묵이 게속되엿다. 그의 사지에서는 무서운 경련이 끈임업시 일엇다. 그것은 죽음의 경련이엇다.

듯기 힘드른 작은 그의 소리가 또 그의 입에서 나왓다.―

「선생님」

「웨?」

「보구시퍼요. 전 보구시...」

「뭐이?」

그는 입을 움지기엇다. 그러나 말이 안나왓다. 긔운이 부족한 모양이엇다. 잠시 뒤에 그는 또다시 입을 움지기엇다. 무슨 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왓다.

「무얼?」

「보구시퍼요. 붉은산이―그러구 힌옷이!」

아아 죽음에 림하여 그는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엇다. 余는 힘잇게 감엇든 눈을 고즈넉이 떳다. 그때에 삵의 눈도 번쩍 띄엇다. 그는 손을 들으려 하엿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은 들리우지 안헛다. 그는 머리를 도리키려 하엿다. 그러나 그 힘이 업섯다.

그의 마즈막 힘을 혀끗에 모하 가지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엇다.―

「선생님!」

「웨?」

「저것―저것―」

「무얼?」

「저기 붉은산이―그리고 힌옷이―선생님 저게 뭐예요.」

余는 도라보앗다. 그러나 거기는 황막한 만주의 벌판이 전개되여 잇슬 뿐이엇다.

「선생님 창가 불러주세요. 마즈막 소원―창가를 해주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余는 머리를 그덕이고 눈을 감엇다. 그러고 입을 열엇다. 余의 입에서는 창가가 흘러나왓다.

余는 고즈넉이 불럿다.

「동해물과 XXXX」

고즈넉이 불르는 余의 창가ㅅ소리에 뒤에 둘러섯든 다른 사람의 입에서도 숭엄한 코러쓰는 울리워 나왓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벌 한편 구석에서는 밥버러지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차차 엄숙하게 울리웟다. 그 가운데서 익호의 몸은 점점 식엇다.』

김동인, 붉은산 - 어떤 의사의 수기, 삼천리 제4권 제4호, 1932.4.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삵은 중국인 지주에게 대들다 죽는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개연성이 없다. 

이상경 선생이 지적하듯  만주의 중국인과 이주한 조선인 사이에서는 문화 차이에 따라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이런 이야기는 없다. 

또한 중국인 지주의 착취 때문에 소작농의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도 없다. 

수전 개간을 둘러싼 물리충돌이나 이것에 개입하는 일본 세력에 대한 묘사도 없다. 그런데 삵은 갑자기 중국인 지주에게 대든다. 

삵은 조선인에게 암같은 존재였는데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점은 이미 옛날부터 지적받은 점인데 김흥규는 1977년에 「황폐한 삶과 영웅주의」(문학과지성, 문학과지성사, 1977.03)에서 이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상경, 김동인의 「붉은 산」의 동아시아적 수용- 작품 생산과 수용의 맥락. 한국현대문학연구 44, 2014.12, 250-251)

또한 이런 소설은 김동인의 기존 창작 경향과도 전혀 달랐다. 

이전 김동인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고 작품에서 계몽주의스런 요소를 드러내는 걸 부정했다. 

그러나 갑자기 이런 소설을 쑥 내민 것이다. 1931년 평양 화교 배척 폭동과 학살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붉은 산과 평양 화교 학살에 대한 연관성과 이에 대한 전문분석은 이상경 선생이 쓴 다음 논문을 참고하자. 이상경, 1931년의 ‘배화(排華)사건’과 민족주의 담론, 만주연구 11, 2011.6, 107~110; 김동인의 「붉은 산」의 동아시아적 수용 - 작품 생산과 수용의 맥락, 한국현대문학연구 44, 2014.12, 249~255)


한국에서 대표되던 근대민족문학 중 하나였던 붉은산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다.


8

이 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에선 이것이 일본의 사주라 주장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책임일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가 체험한 것으로 몇 가지 활례를 들어보겠다. 그 하나는 만주의 만보산 사건이며, 그 둘은 동경 대진재 사건인데, 그것은 모두가 터무니없는 일종의 낭설을 전포시킴으로써, 한․중이나 한․일 간에 정략적인 유혈극을 연출케 한 일본군벌의 조작극이었다.』

(사설, 「사상 선전전을 적극 경계하라」, 동아일보, 1954.12.1. 김준현,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한국문학연구 51, 2016.8, 56에서 재인용)

『동포의 수난 원인은 간단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자가 만주를 침략하기 위하여 친일분자를 앞잡이로 이용한 것이다. (중략) 망국근성의 소유자인 매족도배가 일정의 앞잡이로 가서 가위 경쟁적으로 중국인의 권익을 침해하였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만주사변의 서곡이었던 만보산 사건의 준비공작이었다.』

김우평, 「만보산 사건 전의 만주출장」, 동아일보, 1955.5.15

김준현,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한국문학연구 51, 2016.8, 56에서 재인용)

이런 경우는 한 두사례가 아니다. (윤해동, “만보산 사건”과 동아시아 “기억의 터” -한국인들의 기억을 중심으로-,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SAI Vol.14, 2013. 486~488, 492~497 참고)


그러나 이 주장은 현재 학계에서 비판을 받고있다.


예로 일본군부가 직접 개입했다는 가설에 반박이 있다. 

예로 이사하라 간지를 중심으로 관동군 참모부군에서는 '만몽영유계획' 골격을 이미 1931년 6월에 갖춘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보산 충돌 음모 → 만주사변 이라는 음모가설은 인과관계에 대한 정합성이 부족한 비약이란 지적이다.

(손승회, 근대 한중관계사의 새로운 시각 모색- 萬寶山事件 연구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역사학보 202, 2009.6, 401)


그 밖의 사건의 원인을 음모론으로 보는 것에도 비판이나 반대의견들이 있다.


『화교배격사건의 원인을 일단 한국인의 화교배척감정(華僑排斥感情)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민족성 문제는 韓·中間을 이간질 시키려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것이고,이는 과거 개화파 지식인들이 만들어온 중국인 멸시관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이 민족성 문제가 화교배격사건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으나,직접적인 관련은 없기 때문』

석사학위논문, 김희용, 日帝强占期韓國人의 華僑排斥, 2009, 3쪽


『이러한 일본의 책동설은 당시에도 제기되었다. 물론 당대 사람들의 인식은 그 자체로 연구 대상이지만 그것이 다 사실에 들어맞는 건 아니다 사건 하나하나가 일본의 대륙 정책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각각이 각본처럼 연결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에는 책동설의 근거가 부족하고 만보산 사건에서 만주사변 에 이르는 연쇄의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정병욱, 신설리 패, 중국인 숙소에 불을 지르다 - 1931년 반중국인 폭동에 대한 재해석, 역사비평 , 2012.11, 340


『일본의 책임은 확인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사주’ 혹은 ‘음모’를 사건의 주된 요인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일본인이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질하여 항일연대를 파괴하기 위해 만보산사건을 조작했다고 하거나, 오보를 양산하고 식민지조선인을 사주하여 눈엣가시인 화교를 축출하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된 행동으로서 배화폭동을 야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고 더라도 1931년 조선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화교학살 폭동에 대해 한국인이 마땅히 지녀야할 역사적 책임감과 그에 따른 엄중한 반성의 당위성까지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손승회, 1913년 일제강점기의 배화폭동과 화교, 중국근현대사연구 41, 2009.3, 163)


오히려 지구사로 따지면 이것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사태였다. 딱히 '제국의 인위적인 음모'라고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1927년의 배화폭동을 계기로 인적 교류에 대한 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특히 중국노동자에 대한 단속문제가 한중관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미 일본에서는 조선에 한 발 앞서, 중국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와의 경쟁, 관동대지진

때의 중국인 학살이 발생했다. 이 과정은 넒은 의미에서 19세기 말 미국의 중국인 노동자

학살과 1903년의 중국인 노동자 입국금지령의 전개와 흡사하다. 즉, 공업화 정도에 따라

해외노동력이 유입될, 그리고 그를 흡수할 수요가 발생하기까지의 시간이 틀리기 때문에,

시차를 두면서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 시기가 미국의 경우 19세기 중․후반

이었다면, 일본은 제1차 대전 호황기의 1910년대로 볼 수 있다. 외국노동자가 자국사회에

충격을 줄만한 규모로 유입되면, 이 인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논리와는 별도로 사회갈등

이 발생하게 된다. 조선의 경우 그 시기는 1930년대였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단초가 나타

나고 있었다』

강진아, 조선총독부의 화교 노동자 입국 관리와 중국 언론, 중국근현대사연구 59, 2013.9, 112


김준현은 『‘만보산 사태’를 획책한 배후로 일본을 지목한 상태에서는, 다른 갈등주체들의 능동성을 소거해버릴 위험성도 내재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준현,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한국문학연구 51, 2016.8, 57)


학자들은 이점을 지적한다. 한국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기영과 김동인의 수기는 입을 모아 그 학살의 대 상에 갓난아이도 포함될 정도로 무자비하고 비인도적인 사건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배화 사건’은 조선인의 손으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이민족에 대한 증오 공격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기억은 ‘만보산 사건’의 기억보다 더욱 마음 편히 접근하기 어려운 연구 대상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배화 사건’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은 억압되어 있었다. ‘배화 사건’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는 한국문학사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찾기 힘들며, 전국적 규모로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이만큼 문학적 형상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만큼 문제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현,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한국문학연구 51, 2016.8, 59)


『‘배화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그 교훈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그 결과 ‘배화 사건’은 민족의식의 오용에 대해 반성할 기회가 되었지만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식민주의자 일본으로서는 중국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기에 보도 통제와 의식적 외면 속에서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그러나 한국 사회가 점점 더 다양한 민족을 포괄하고 있는 현 시점이야말로 ‘배화 사건’을 불러내어 그 의미와 파장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 일 것이다.』

(이상경, 1931년의 ‘배화(排華)사건’과 민족주의 담론, 만주연구 11, 2011.6, 112)


『우리는 관동대진재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잊지 못한다. 당시의 기록과 증언을 찾아내고 그를 들이대면서 반성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참 불균형하다. '노근리'에는 치를 떨면서도 베트남에서 '우리'가 한 짓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반성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작다. 꼭 마찬가지로 관동대학살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시하면서도, 1931년 여름의 중국인 학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없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전우용, 한국인의 화교관 -자가당착적인 민족서열의식, 실천문학 , 200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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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차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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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학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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