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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가 난곡인 이유 (by 손열음)

ㅇㅇ(220.124) 2016.02.18 20:06:40
조회 10619 추천 81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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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슈베르트 곡들이 왜 어렵냐는 글이 올라왔었는데

그 글 보고 생각나서 올리는 글. 손열음이 작년에 낸 책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 있는 글.

내가 피갤러들을 위해 일일이 타이핑했다 ㅋㅋ 내가 저 책에서 맘에 들어 한 챕터들 중의 하나였기도 한지라 즐거운 마음으로.

손열음이 아래 쓴 글과 비슷한 요지의 댓글을 저 질문글에서 안테횽이 간결하고 멋지게 달아줬었는데

그 댓글 캡처해서 여기 올리려고 찾아보니 그 질문글 지워졌네. 아깝..




<우리에겐 너무 어려운 사람 - 프란츠 슈베르트>


왕년의 최고 스타 리스트.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못 칠 줄 알았던 초절기교의 곡들을 200년 후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이 눈 감고도 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너무 쓸데없이 어렵다'며 연주를 거절 당했던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1번>. 연주하는 것이 석탄 1000톤을 삽으로 푸는 스태미나와 맞먹는다는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도 이제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의 십팔번이 된 지 오래다.
프로그램에만 넣으면 테크니션이라는 수식어를 자동으로 안겨주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나, 그보다 더 어려운 곡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라벨이 칼을 갈고 쓴 <스카르보> 역시, 이제는 완벽하게 연주하지 못하느니 안 하는 게 나은 곡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기술적으로 정복당하지 않은 최후의 난곡을 우리 음악가들은 안다. '음악가들은 안다'고 한 건, 정말이지 음악가들 말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그 곡이 뭔지 정답부터 말하겠다. 답은, 슈베르트의 기악곡들이다.
가곡의 왕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는 다작의 왕이었다. 650곡이 넘는 가곡 이외에도 미사곡, 극음악,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모두 합쳐 800곡에 달하는 곡을 쏟아냈다. 그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을 그토록 다양한 종류로 써낸 사람은 바흐 이래 슈베르트 한 사람 뿐이다. 서른둘에 박명한 그가 마흔만 넘겼더라도 바흐의 작품 수(1000여 곡)를 훌쩍 넘겼을지 모르겠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작품이 하나같이 수작이라는 것이다. 사실 생의 전반에 걸쳐 고루 수작을 써낸 작곡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환상교향곡>을 쓴 베를리오즈나 <카르멘>을 작곡한 비제, <세헤라자데>의 작곡자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다른 작품을 다섯 곡 이상 떠올릴 수 있던가? 그런데 슈베르트는 히트작만 수십 곡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작품이 별 이유 없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바흐는 교회에, 하이든은 귀족에, 모차르트는 그 모든 돈을 주는 사람에게 고용되어 작품 활동을 한 피고용자였다. 일단, 슈베르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말년의 모차르트나 타고난 반골 기질의 베토벤처럼 순전히 자의로 체제 전복을 꿈꾼 위인들과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그저 고용되지 못한 실업자에 불과했다. 비유하기엔 어쭙잖지만 칼럼 마감 다섯 시간 전만 해도 두 줄 이상을 넘기지 못하는 내가 마감 시각을 넘기는 순간부터 속필가가 되는 것만 보아도, 200년 전의 무직자가 누구도 독촉하지 않는 곡을 수백 개나 써내려갔다는 건 실로 불가사의다. 그의 음악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본질적으로 달랐다는 소리다.
아론 코플랜드는 말년에 스스로의 영감이 바닥났다는 것을 시인했다. 서태지도 은퇴할 당시 창작의 고통이 감당하기 힘들어서라고 했다. 짐작하건대 슈베르트는 이게 대체 무슨 말들인가 했을 것이다. 그는 평생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면 영감들이 알아서 찾아오니, 그것들을 받아 적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 그의 거의 모든 곡은 즉흥곡이라 해도 크게 틀릴 것이 없다. 단, 최고급 재료에 걸맞게 최고급 기계로 짜낸 주스에 비유할 만한 것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라 한다면, 그에 비해 슈베르트의 음악은 직접 손으로 짜낸 주스라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모차르트의 그 '최고급 기계'는 단순히 형식이나 구성을 일컫는 것만은 아니다. 그럼 또 뭘 말하느냐고?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서유럽 전역으로 연주 연행을 다닐 정도의 피아노 신동이었다. 따지고 보면 군중 앞에서 피아노 배틀을 벌일 정도였던 베토벤, 틈만 나면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하이든과 멘델스존. 모두 악기에 정통했던 사람들이었다.
다음 세대의 슈만, 쇼팽, 리스트는 말할 것도 없는 피아노의 귀재들... 슈베르트처럼 악기의 메커니즘에 무지한 음악가는 실로 드물었다. 그런데 외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외국어책을 목으로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벌려 여러 번 읽는 것은 실제 발음 연습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사람의 발성은 혀끝과 입속, 깊게는 목구멍과 콧속까지 모두가 총동원돼야 하므로 음소거 상태에서 연습해보는 발음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음악이 이와 같다. 작곡가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곡상은 실제 사람이 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내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낳고 마는 것이다. 쇼팽, 슈만, 리스트의 피아노 음악이 멜로디부터 다른 것은 그들의 음악성이 달랐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 각자가 피아노를 다룬 방식이 상이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슈베르트가 또 다른 피아노 신동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슈베르트의 멜로디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된다. 음악사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라 해야 될까.
자신의 가곡 <마왕>의 반주부를 쳐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슈베르트는 "이런 건 악마나 치라고 해"라고 했단다. 최고로 단순한 소품도 악마적 기교들로 장식해 편곡하는 게 취미이던 리스트가 이 곡도 손을 댔다. 한데 이 지극히 피아노적인 편곡은 원곡의 비논리적 난이도에 비하면 너무 합리적이라, 심지어 쉽게 느껴질 정도다. 리스트한테도 이 곡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음계)은 불규칙해서 도저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 이 곡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듣는 이의 사정. (옮긴이설명 : 슈베르트 곡들의 문제는 연주자와 청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라는 말. 연주자에겐 개어렵, 청자에겐 자연스럽고 쉬운 곡처럼 들리는.)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겼을 뿐인 그의 음악이 어렵게 들릴 리 만무하다.
보기에는 한없이 우아한 백조 같은 슈베르트의 음악. 물속에서 쉬지 않고 발 굴러야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손해 보는 장사임이 틀림없는데도 여전히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장 사랑받고 잇다.
'고작'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접어둘 수는 없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니, 우리의 고충쯤은 몰라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한줄요약) 악기알못 슈베르트가 악기특성 그딴거 상관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른 음악세계 및 이상향을 악보에 옮겨놔서, 후세의 연주자들은 그 비논리성 & 각종 도약·비약 등등 땜에 똥줄 빠지고, 급기야는 올해초 짐머만처럼 악보 보면서 슈베르트 치는 사태가 일어난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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