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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녀? 로그 사이커?

붕장어(174.21) 2018.10.16 02:25:25
조회 13997 추천 109 댓글 19
														

타이로스Tyros에서 성녀라고 불리던 16, 17세의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염된 우물을 정화하는 등의 이적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황제의 은총을 받았다고 소문이 났는데, SoB의 이올란스Iolanth 자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전장에 세워 보니까 데몬 엔진이 내뱉은 역병덩어리가 사람들 몸에 닿으니 깨끗한 물로 바뀌고 말 한마디로 데몬 엔진들을 하늘에서 떨어뜨리며 몸에서 황금빛을 내뿜는 기적을 보였다. 이 아이가 진짜로 성녀일지, 아니면 그냥 강력한 사이커일지 갑론을박이 일었고, 길리먼은 소녀를 일단 보류하고 구속해두자고 했지만 소녀가 성녀임이 확실하다고 믿은 사제 마티유Mathieu는 수작을 부려 아이를 전장에 내보내는데...

   "사라져라." 소녀가 말했다.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마치...

...

   "믿음을 가져라, 데보러스Devorus," 그녀가 말했다. 눈에서처럼 그녀의 입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견디지 못하고 눈길을 돌려야만 했을 정도로 밝디밝은 빛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의 내면을 잡아끄는, 영혼의 톱니바퀴를 재설정하는 오래된 힘이 실려 있었다. "믿음을 통하여 너는 구원받으리니, 신봉이야말로 승리로 향하는 길이로다." 안개조차도 두려운 듯 몸서리쳤다. "믿어라, 그리하여 살아라."

...

   그리고, 가장 절박했던 그 순간, 그녀가 왔다. 마치 사악한 마법으로부터 태어난 악귀들의 압박을 그저 시장에 모인 군중을 헤치고 걷는 것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는 어린 소녀가. 황금빛을 발하는 소녀가 가뿐히 전장을 걷고 있었다. 발밑은 질척한 진창으로 변해 있음에도, 소녀는 그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은 공허했고 피부는 얼룩져 있었다. 두피에서는 머리카락이 그 순간에도 한 줌씩 떨어져나가고 있었고, 하얀 옷은 타 눌어붙고 있었다. 그녀는 산 채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허나 그녀가 두 프라이마크에게로 가까워짐과 동시에 그녀를 둘러싼 부드러운 빛은 더욱더 밝아져가고 있었다. 싸우는 자들을 뒤덮은 안개가 광채로 물들어 사악한 독기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빛으로 그 안을 채웠다. 커스토디안 가드 콜콴Colquan은 소녀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프라이마크 형제들의 대화가 그의 귀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와 싸우던 괴물도 더 이상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죽을 수도 있었다. 데몬에 의해 살해당했을 수도 있었다. 허나 태어난 적 없는 것Neverborn조차 소녀에게 정신이 홀려 있었다. 놈이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소녀를 가르키며 무덤의 먼지에 목이 메인 듯 꽉 막힌 목소리로 신음하듯 내뱉었다.
   "불An-구ath-대e-천ma..."
   단 한 마디. 그 단 한 마디가 허공에 울리며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비단마냥 부드럽게 소녀 쪽으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정지했다. 원자가 그 움직임을 멈췄다. 공중에서 빛조차 달리기를 그만두었다. 핏줄기가 전장 위로 호를 그리며 굳어졌고, 볼트 탄환이 허공에서 궤적을 멈추었으며, 흔들리던 촛불이 요동치기를 그만두었다. 영원과도 같은 차가운 느낌이 콜콴을 사로잡았다. 오직 그만이,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유로이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전사들 모두가 마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움직임을 멈춘 채였다. 길리먼은 살아있는 빛의 속박에 감겨 있었고, 모타리온은 머리 위로 대낫을 치켜든 채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었음에도, 우주 전체가 그 찰나의 한 순간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소녀는 계속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소녀가 고개를 돌려 콜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서는 시간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황금빛이 타오르고, 입에서는 별의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투구 속에서, 콜콴이 입을 떡 벌렸다.
   "주군?" 그가 속삭였다.

...  

   소녀가 전장 위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그와 함께 지면으로부터 빛의 반구dome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주위의 모든 것을 감쌌다. 사람과 스페이스 마린은 비틀거렸다. 태어난 적 없는 것들은 비명을 질렀다. 모타리온의 무기가 내려쳐지기 직전 그 빛에 휩싸였다.

...

   약한 악귀들은 마치 용광로 속으로 던져진 얼음조각마냥 증발하여 비물질계immaterium으로 통곡하며 되돌아갔다. 보다 강한 것들은 소녀의 광채에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놈들의 피부에 물집이 일었다. 놈들의 눈이 익어버렸다. 놈들은 곡성을 질러대며 울부짖었다. 모타리온, 이제 인간보다 데몬에 더 가까웠던 그는, 날개가 꺾인 채 뒤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길리먼을 속박하던 구속이 한낱 발광이끼 한 줌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고, 프라이마크가 다시금 자유를 얻었다.

...

   이제까지 소녀의 몸 속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든지,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소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소녀의 두 눈은 불타없어져 있었고, 입술은 이 위에 검게 눌어붙어 있었다. 그 어떤 필멸자도 그렇게 강력한 힘을 오랫동안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전장에 와 있는 소녀. 길리먼에게 그녀는 인류제국을 이루는 수많은 별에서 보아온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 중 또 하나였다. 그는 소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작디작은 손을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

   "이제는 이 소녀가 적의 책략이라거나 위험한 사이커일지 신경쓰이지 않으십니까, 주군?" 이올란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죽어가는 여자아이 뿐일세." 길리먼이 말했다. "그녀가 무엇이든, 아니 무엇이었든간에, 이 소녀는 그 무엇보다도 우선 테라의 자식이었어."

...

   "말해주게, 이올란스 수녀. 자네는 이게 인류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우리가 살아남아 언젠가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 믿나?"
   이올란스는 그 질문에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를 진심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저는 신봉하고faith 있습니다, 주군이시여."
   "신봉한다고?"
   "네, 주군. 저는 당신의 아버님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길리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떨 때는, 나도 그런 신봉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네."
   소녀가 신음하며 눈이 없는 얼굴을 그를 향해 돌렸다.
   "당신이 황제 폐하께서 다시 육신을 입으신 분이신가요?" 소녀가 조용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만큼 짓눌린 말이었다.
   "나는 그분이 아니란다." 길리먼이 말했다. "그분이 나를 만드셨지. 나는 그분의 피조물이야. 나는 그분의 아들, 열세번째이자 유일한 프라이마크, 울트라마의 로부트 길리먼이란다."
   "당신은 그분과 닮았어요." 눈이 멀었음에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 얼굴에는 미소가 퍼져 있었다. "저는 아주아주 대단한 것들을 보았어요."
   "너는 누구지?" 길리먼이 물었다. "매그너스?" 그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아버님?"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한숨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너는 누구냐?" 길리먼이 다그쳤다.
   소녀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한 손을 상처입은 옆구리에 가져다댄 채로, 이올란스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황제 폐하의 은혜 아래에서 죽은 자는 잃은 게 아니요, 오히려 영원무궁한 천계에서 그분의 빛 속에 거하게 되나니. 오, 주군,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그녀가 죽은 소녀의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피맺힌 미소를 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보호하십니다," 이올란스가 말했다. "황제 폐하가 보호하심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길리먼이 소녀의 훼손된 몸으로 눈길을 옮겼다.
   "나는 결코 그걸 믿을 수 없을 걸세." 그가 말했다.


그리고 길리먼은 소녀를 타이로스에 놓아두라 한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마티유에게 개빡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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