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구 깎던 체펠리 - 죠죠의 기묘한 모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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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구 깎던 체펠리앱에서 작성

ㅇㅇ

2019.07.27 21:08:18

조회 3614 추천 35 댓글 5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파문전사된지 얼마 안 돼서 에어 서플레이나에 내려가 살 때다. 두왕리 왔다 가는 길에, 콜로세움역으로 가기 위해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케이프 커내버럴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철구를 깎아 파는 체펠리가 있었다. 철구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철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체펠리였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아바차가 되지, act 1이 재촉한다고 act 4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체펠리,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체펠리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철구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철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철구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체펠리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체펠리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케이프 커내버럴 지붕 창틀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다워 보였다. 이상한 수염과 금 이빨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체펠리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철구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스탠드를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차원의 틈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체펠리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이 철구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체펠리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체펠리가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좀비말을 뜯고 있었다. 전에 땅을 철구로 쿵쿵 두들겨서 만들던 생각이 난다. 철구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스탠드질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치즈의 노래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철구 깎던 체펠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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