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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갤문학 / 릴레이 ] 정령 전쟁 3

NBDEOK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1.02 02:05:30
조회 1125 추천 47 댓글 33

게일. 다섯번째 정령의 익숙한 음성에 주위를 맴돌던 온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괜찮을까요? 걱정이 잔뜩 흐르는 얼굴을 양 손으로 한껏 끌어올린 올라프가 어색하게나마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까마귀는 반짝이는 걸 좋아해서 까마귀 둥지엔 온갖 반짝거리는 것들이 가득하대요. 나름의 희망적인 이야기로 맥없이 끝나버린 숨바꼭질의 분위기를 되살려 보려는 올라프의 짧은 몸뚱이를 들어올려 스벤의 등에 태운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술래가 바뀌었나 보네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전 병력, 경계태세를 갖추되 드러내진 마세요, 상대가 도발하기 전까지. 무엇보다 사람들이 안전한게 중요하니까요."

"안나."

"간만에 놀러왔는데 미안해."

"아니야. 잠깐, 이게 무슨 냄새지? 게일?"





점점 광장에 가까워지는 이방인의 곁을 살핀 바람의 정령이 옮겨온 것은 낯설지만 분명한 화약의 냄새였다. 엘사가 성의 주변을 강철검마저도 무력화 시키는 얼음 장벽으로 감싸는 사이, 게일은 무언가 더 전할 말이 있는 듯 바삐 움직이며 안나의 주위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모두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모두가...휘말릴...것이다? 게일의 움직임에서 메시지를 읽는 데 집중하던 안나의 얼굴은 이제 엘사만큼이나 창백해져있었다.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려나 봐요!"

"올라프. 망원경 잠시만 다시 줘 볼래?"

"여깄어요, 안나. 저 사람은... 대체 누굴까요? 낯선 사람인데...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어요."

"그리운 느낌...?"

"네."

"그리운 느낌이든 뭐든, 마을에 해가 된다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어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크리스토프. 저 여자가 누구든, 나는 내 사람들을 지킬 의무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거구요."





말을 맺기가 무섭게 휘청이는 엘사를 부축한 안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심해. 다시 말하지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언니의 모든 걸 희생할 필요는 없어. 다리에는 양끝이 있고,




"나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거 알아."

"알면 제발 조심해. 언니가 이럴 때마다 내 수명도 같이 깎이는 기분이야. 내가 말했지?"

"알았어."

"그럼 손님을 맞이하러 가볼까?"

"그래."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들리는 바람에 자매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소리의 주인은 민망한 듯 점점 다가오는 재앙의 근원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콰광, 쾅. 모든것을 집어삼킬 듯 터져나오는 굉음과 함께 민가가 불타는 모습을 목격한 크리스토프가 안나의 어깨를 끌어당겨 스벤의 등에 앉힌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한 마디의 상의도 없었지만 셋의 움직임은 이미 모든 것을 의논한 것처럼 한치의 오차 없이 맞물렸다. 스벤의 등에 함께 올라탄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광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게일이 불러들인 물의 정령은 이미 엘사와 함께 마을의 한가운데를 집어삼킨 새빨간 불꽃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불에 그을린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마을을 보며 이자벨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끈한 첫인사를 준비했는데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니, 좀 슬픈걸.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녀의 시야에 제 위용을 한껏 뽐내는 동상이 들어왔다. 참으로 거슬리는 다정함. 가볍게 몸을 날려 동상 위로 올라 선 이자벨라의 손가락이 스친 곳엔 검은 얼룩이 묻어났다. 화합, 평화, 사랑... 우리가 없는 사이에 재밌는 일을 벌이셨네. 이자벨라는 손을 들어 어딘지도 모를 곳을 바라보는 동상의 두 머리를 날려버렸다. 콰광-.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지. 하나, 둘, 셋.




"멈춰."





자신의 카운트 다운에 때맞춰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돌아선 이자벨라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생각보다 더 놀라운 것이었다. 순록을 모는 남자, 그 뒤에서 내리는 맨발의 여왕과 그 누구도 잠재운 적 없는 제 불꽃을 단숨에 잠재워 버리는 여자. 더구나 처음 마주본 순간부터 여왕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녀의 시선을 맞받아 치는 중이었다. 이자벨라는 웃었다. 그 여왕의 머리가 하필이면, 어린시절 제 어미의 것과 너무나도 닮아서.


아니, 사실 여왕의 키도, 풍채도,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그것을 닮아있었다. 핏줄은 못 속인다는 건가. 이자벨라는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의 여왕에게서 시선을 돌려 단 한번도 본적 없는 모습의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겨울 눈송이처럼 새하얀 여인의 발치엔 작은 도롱뇽 하나가 그녀를 향한 적개심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중이었다.




"동족 혐오인가?"

"누구죠, 당신은?"



하얀 여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이자벨라는 또 한번 불덩이를 날렸다. 역시, 잘못본 게 아니었어. 눈 앞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불꽃을 보는 이자벨라의 표정은 도무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보면 무언가를 던지거나 뒷걸음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 그게 이자벨라의 눈엔 가진 자의 여유처럼 보였고, 그녀의 화를 돋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누구는 저주로 낙인찍혀 평생을 갇혀 살았는데. 모든 걸 다 빼앗겼는데. 내 자신을 숨기고, 나를 죽여가며 살았는데. 나를 그렇게 만든 이 곳에서 저 여자는 저렇게 멀쩡히 잘 살고 있다니. 아, 이 세상은 너무나 우스워. 난데없이 숨이 넘어갈 듯 웃는 이자벨라를 보며 크리스토프는 안나에게 귀엣말을 했다.






"... 지금 공격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뇨,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봐요."

"그렇지만 저 사람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요? 저 여자가 하는 얘기에 들을 가치가 있을지 난 잘 모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아직은, 아니예요."





한참을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멈추고, 네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아암-. 멀찌감치 스벤의 엉덩이 뒤에 숨어있던 올라프의 하품소리가 들리고서야 긴장은 깨어졌다. 죄송해요, 새벽까지 책을 읽었더니 너무 피곤해서요. 계속 하세요. 저는 여기서 구경할께요. 평소라면 여럿을 웃기고도 남았을 올라프의 능청에도 사람들의 낯빛은 심각하기만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침묵 속에 이자벨라가 입을 열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안녕, 아렌델. 그리운, 내 어머니의 고향."

"....누구시죠?"

"이자벨라. 이자벨라 루나드도티에."

"루나드...라면, 우리 할아버지 이름인데."

"맞아. 반가워, 사촌."

"무슨 속셈이죠? 당신, 여왕님한테 허튼 수작 부리려는 생각이라면 그만둬요. 내가 가만있지 않을테니까."

"아렌델 사람들은, 사람 진심을 이런식으로 취급하나? 초면에 많이 무례하시네. 아, 나같은 사람한테만 주는 특별 대우인가?"




여자의 말을 안나는 곱씹었다. 어머니의 고향? 나 같은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지?



"초면에 재밌는 얘기나 하나 해볼까? 아아 거기, 듣기 싫어도 들어."




적개심으로 등을 돌린 크리스토프의 코앞에 불기둥이 솟았다. 곧바로 엘사의 손길이 불을 잠재웠지만 간발의 차로 크리스토프의 앞머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바스라진 앞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부비며 궁시렁대는 크리스토프를 무시하고, 이자벨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저 역겨운 동상의 머리를 날리기 직전까지, 그녀가 걸어온 길고 긴 여행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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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이지경이라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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